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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신바람 야구'의 거인, 이광환 감독 별세…그가 진짜 '참 어른'이었던 이유

by 새빛세상 202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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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눈과 귀! 세상은 요지경😃 입니다.

 

오늘, 한국 야구계에 아주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94년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며 팬들에게 우승의 감격을 선물했던 명장, 이광환 전 감독께서 향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입니다.

 

많은 팬들은 그를 '우승 감독', '선진 야구의 선구자'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가 야구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진정한 '참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은 승부의 세계를 떠난 뒤, 그의 삶이 더 위대하게 빛났던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고인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1. '신바람 야구' 신화와 '선진 야구'의 선구자

이광환 감독은 1980년대 말, 척박했던 한국 야구에 '자율'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혁신가였습니다.

    • 선진 야구 도입: 일본과 미국에서 직접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수직적인 위계질서 대신 선수 개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자율 야구'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선발-중간-마무리'로 이어지는 현대적인 '투수 분업화'를 국내에 정착시킨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 1994년 LG 트윈스 우승:

그의 야구 철학은 1994년 LG 트윈스에서 만개했습니다.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즐겁게 뛰게 만드는 '신바람 야구'는 그해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라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시절의 LG 트윈스는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가장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 진짜 '명장'의 모습: 서울대 운동장의 돌멩이

화려한 프로 무대를 떠난 뒤, 그의 인생은 더욱 위대하게 빛났습니다.

    • 10년간의 재능 기부:

그는 2010년부터 무려 10년간,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서울대학교 야구부'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프로 선수가 아닌,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인 아마추어 팀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입니다.

    • 돌멩이를 골라내던 감독님:

그의 진심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선수들이 불규칙한 바운드에 다칠 것을 염려해, 매일 연습 시작 1~2시간 전에 먼저 운동장에 나와, 허리를 숙이고 손수 그라운드의 돌멩이를 골라냈습니다. 화려한 우승 감독의 모습이 아닌, 제자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참 스승'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기술보다 '협동'과 '희생'의 가치를 먼저 가르쳤습니다.

 

3.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나눔'과 '봉사'

그의 '선한 영향력'은 은퇴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2020년, 폐섬유증을 앓으며 서울대 감독직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내려가 요양하면서도, 그는 나눔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주 생활 중에도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돕는 '교통안전 지킴이'로, 동네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티볼 강습' 봉사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불과 지난 3월, LG 트윈스의 시즌 개막전에 시구자로 나서 건강한 미소를 보여주었기에, 갑작스러운 비보는 팬들에게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야구를 넘어 '사람'을 키운 스승

우리는 이광환 감독을 'LG 우승 감독'으로만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야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 혁신가이자, 프로 무대를 떠난 뒤에도 낮은 곳에서 묵묵히 '사람'을 키워냈던 위대한 교육자이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참 어른'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남긴 '신바람'과 따뜻한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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